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경궁 경춘전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484년([[성종(조선)|성종]] 15년) [[창경궁]] 창건 때 지어졌다. 성종의 [[어머니]] [[소혜왕후|인수대비]]가 처음으로 거주했고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ja_11004027_005|#]] 1592년([[선조(조선)|선조]] 25년) [[임진왜란]] 때 불탄 것을 1616년([[광해군]] 8년)에 중건하였으며 다른 [[창경궁]]의 [[건물]]과 달리 [[이괄의 난]] 등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. [[인조]] 때는 [[소용 조씨]]의 [[장남]] [[숭선군]]의 [[부인]]을 [[간택]]하는 장소로도 쓰였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pa_12603121_001|#]] [[숙종(조선)|숙종]] 시기엔 왕도 머물렀고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sa_12507104_001|#]] 숙종의 [[왕비|계비]] [[인현왕후]]는 폐비되었다 복위된 후 잠시 이곳에서 거주하다 [[죽음|승하]]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sa_12708014_001|#]] [[영조]] 때는 [[효장세자]]와 [[숙종(조선)|숙종]]의 세 번째 [[왕비]] [[인원왕후|혜순대비]](인원왕후)가 거주했고, 나중에는 [[혜경궁 홍씨]]가 살면서 여기서 [[의소세손]]과 [[정조(조선)|정조]]를 낳았다. 정조는 즉위 후 어머니를 [[창경궁 자경전|자경전]]으로 옮겨 모셨고 자신이 태어난 이곳을 수리하면서 탄생전(誕生殿)이란 편액을 붙였다. [[순조]] 즉위 후 혜경궁은 다시 경춘전으로 돌아왔고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wa_11512015_004|#]] 정조와 순조는 생모와 친할머니가 주로 머물던 경춘전을 굉장히 각별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경춘전의 역사와 부모에 대한 효성 등을 담은 《경춘전기》를 지었다. 이후 [[효명세자]] 부부가 사용하였으며, [[신정왕후 조씨|세자빈 조씨]](신정왕후)가 [[헌종(조선)|헌종]]을 이 곳에서 낳았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xa_200001|#]] 1830년([[순조]] 30년)에 [[화재]]로 소실되었고 1834년(순조 34년) 3월에 재건되었다. [[일제강점기]]에 [[창경궁]]이 [[창경원]]이 되면서 [[유물]] 전시실로 쓰여 내부와 외형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. [[2000년대]]에 [[복원]]하여 오늘에 이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